“이건 사랑이 아니야” 은퇴 경찰과 문화센터 강사의 끔찍한 황혼 동거

“이건 사랑이 아니야” 은퇴 경찰과 문화센터 강사의 끔찍한 황혼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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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 시간을 맞이해보니, 시작이라기보다는 갑작스럽게 멈춰 선 느낌에 가까웠다.
나는 서른이 채 되기 전 경찰이 되었고, 삼십 년 넘게 같은 제복을 입고 살았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 위급한 상황, 밤샘 근무까지 익숙했지만
정작 퇴직 후 맞이한 조용한 아침은 견디기 힘들었다.

아내는 십여 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났고
아이들은 모두 독립해 각자의 삶을 살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집 안은 지나치게 조용했고
저녁이 되면 괜히 텔레비전 소리를 키우게 됐다.
누군가의 숨소리, 사소한 말 한마디가 그리워지는 시간이었다.

그런 나날 속에서 동네 문화센터를 찾게 된 건
정말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집에만 있으면 생각이 많아지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하루가 점점 무서워졌기 때문이다.
기타 수업, 글쓰기 강좌, 인문학 특강을 기웃거리다
그녀를 처음 봤다.

박선영.
예순 살, 문화센터 강사.
단정한 옷차림에 말투는 조용했고
사람을 바라볼 때 고개를 살짝 기울이는 습관이 있었다.
강의가 끝난 뒤 질문을 하러 다가갔을 때
그녀는 끝까지 내 말을 듣고, 급하게 답하지 않았다.
그 태도가 이상할 정도로 편안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강의가 끝난 뒤 자연스럽게 커피를 마시게 됐다.
각자의 삶에 대해 조금씩 이야기했다.
그녀는 오래전 이혼을 했고,
혼자 사는 시간이 길었다고 했다.
아이들은 있지만 자주 보지 못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혼자 늙는 게 제일 무섭더라고요.”
그 말이 내 마음을 정확히 찔렀다.

그날 이후 우리는 자주 만났다.
책 이야기, 예전 일, 건강 이야기까지
대화는 늘 조용했고, 무리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다시 만난다는 것이
이렇게 부담 없을 수 있다는 게 오히려 낯설었다.

몇 달이 지나
선영이 먼저 말했다.
“같이 살아보는 건 어떨까요?”
결혼은 아니고,
각자의 삶을 존중하면서
서로 외로움을 덜어주는 동거.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그 제안이 두렵기보다는 안심처럼 느껴졌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동거 초반은 평온했다.
아침을 같이 먹고
각자 할 일을 하다 저녁에 다시 만났다.
크게 웃을 일도, 크게 다툴 일도 없었다.
나는 그 시간을 ‘황혼의 안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서히, 아주 조금씩
어딘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소한 말이었다.
“오늘은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와요?”
“그 친구는 왜 자주 만나요?”
걱정처럼 들렸고,
나는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다.

하지만 질문은 점점 구체적이 됐고
대답을 하면 다시 다른 질문이 이어졌다.
어디를 갔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왜 연락을 바로 받지 않았는지.
그날 하루를 보고하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친구들과의 약속이 잦아지자
선영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이 나이에 밖에서 그렇게 돌아다니는 게 좋아요?”
“집에 있는 사람이 기다린다는 생각은 안 해요?”
그 말 속에는 은근한 비난이 섞여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외출 전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괜히 갈등을 만들고 싶지 않았고
이미 같이 살고 있으니
서로 조금씩 맞춰가는 게 맞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선영은 점점
우리 관계를 “부부와 다를 바 없다”고 표현했다.
그 말은 곧
의무와 책임이라는 이름의 요구로 바뀌었다.

몸이 피곤하다고 말하면
“그 정도도 이해 못 해주냐”고 했고
거절하면
“전 남편은 이렇지 않았다”는 말을 꺼냈다.
비교는 늘 조용히, 그러나 정확하게 상처를 남겼다.

나는 분명히 말했다.
“천천히 가고 싶다”고.
“서로 편안한 게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 말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어느 날 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먼저 쉬고 싶다고 했을 때
선영의 표정이 처음으로 달라졌다.
차분하던 얼굴이 굳고
목소리가 낮아졌다.

“당신도 결국 다 똑같네.”
“외롭다더니, 필요 없으면 이렇게 밀어내는 거야?”

그 말은
내가 알던 선영의 말투가 아니었다.
설명하려 했지만
그녀는 더 이상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날 이후
집은 더 이상 편안한 공간이 아니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
뒤에서 들리는 발소리에도
몸이 먼저 반응했다.
경찰로 수십 년을 살았지만
그때 느낀 불안은 전혀 다른 종류였다.

결정적인 순간은
아침 부엌에서였다.
식사를 준비하던 중
선영이 갑자기 뒤에서 다가왔다.
나는 “지금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 말은 무시됐다.

그 순간
분명히 깨달았다.
이건 사랑이 아니었다.
배려도, 존중도 없었다.
상대를 소유하려는 집착,
그리고 통제였다.

그날 밤
나는 소파에서 한숨도 자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문화센터에서 알게 된 상담기관 번호를 다시 찾아봤다.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전화기 너머에서 들은 말은 분명했다.

“동의 없는 요구가 반복된다면
그건 관계 문제가 아니라 폭력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동안 내가 애써 덮어왔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두려움, 혼란, 그리고 수치심까지.

나는 짐을 싸서
잠시 친구 집으로 몸을 옮겼다.
선영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고만 남겼다.

그날 이후
메시지는 쉴 새 없이 왔다.
처음에는 사과였고,
그 다음은 비난이었으며,
마지막에는 협박처럼 느껴졌다.
“당신 없으면 난 망가진다.”
“이 나이에 혼자서 뭘 할 수 있겠냐.”

하지만 돌아가지 않았다.
이번에는
내 자신을 설득하지 않기로 했다.

며칠 후
동거는 완전히 정리됐다.
서류도, 법적인 문제도 남기지 않았지만
마음에는 깊은 흔적이 남았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만 말하고 싶다.

황혼의 사랑은
참는 것이 미덕이 아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존엄을 내려놓아야 할 이유는 없다.
사랑은 요구가 아니라
서로의 경계를 지켜주는 일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면
혼자 견디지 말았으면 한다.
도움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고
당신의 잘못은 아니다.

황혼은
마지막으로 자신을 지켜야 할 시간이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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